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에몽 1세 (문단 편집) === 실패와 죽음 === 안티오키아를 되찾으려던 [[알렉시오스 1세]]는 [[마누일 부투미티스]]가 이끄는 1만 5천의 군세로 킬리키아와 북시리아를 휩쓸었으나 보에몽은 다행히 전화(戰禍)를 피했다. 그러나 타우루스 산맥을 통제하는 요충지였던 멜리테네를 [[다니슈멘드]] 왕조가 공격하자, 아르메니아인 영주들을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적은 병력을 이끌다가 결국 다니슈멘드의 대군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됐다. 이 사건을 '보에몽 경매'라고 부르는데, 주요 입찰자는 총 세 명이었고, 그들은 각각 즉위와 동시에 그에게 털리고 충성 서약을 배반 당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니케아를 두 눈 뜨고 빼앗긴 채, 도릴레온에서 보에몽의 침착한 지휘에 대패하고 물러났던 룸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 그리고 사로잡힌 보에몽 본인(...)이었다. 어쨌거나 각 군주들의 입찰가는 다음과 같았다. >알렉시오스 1세 : 현찰 박치기로 26만 디나르[* 과연 황제답게 돈이 많았다.] >클르츠 아르슬란 : 13만 디나르와 휴전 협약[* 보에몽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 자신이 공격하겠다고 했는데, 거의 협박에 가깝다.] >보에몽 : 13만 디나르와 군사적 협력[* 돈에 더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가장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룸 술탄국과는 휴전이고 나발이고 틈만나면 치고 박았으므로.] 다니슈멘드 술탄은 이 세 가지 제안 중에서 보에몽의 제안을 선택하였다. 이후 풀려났으나 세력이 약해진 보에몽은 이미 강성해진 동로마 제국과 세력 균형이 선 우트르메르([[십자군 국가]])를 떠나 전세를 뒤집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군사를 일으켜 동로마 제국의 두라초 항구를 공격했다. 그러나 과거에 그가 엿먹였던 [[타티키오스]]와 함께 요안니스 콤니노스 두카스가 그를 맞이했고, 노르만족 군대는 안티오키아 방면으로도, 서부 제국 방면으로도 패배하여 1108년 데볼 조약이라 불리는 굴욕적인 항복 조약을 맺었다 조약에 따라 안티오키아는 명목상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됐다. 안티오키아는 동로마 제국에 (전쟁 시) 병력과 세금을 납부하게 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정교회 관할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보에몽은 비록 형식적이었지만, 제국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보에몽은 실의에 빠져 안티오키아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부 이탈리아에서 1111년에 사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